정치 드라마라는 말만 들으면 복잡하고 지루할 것 같아서 한동안 손이 안 갔다. 근데 어느 날 심심해서 1화를 틀었고, 그날 밤 4화까지 봤다. 하우스 오브 카드 얘기다.
House of Cards.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중에서 초기에 가장 큰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케빈 스페이시가 주연이고, 데이비드 핀처가 초반 에피소드 연출을 맡았다. 이 두 가지만으로도 퀄리티가 어느 정도일지 짐작이 되는데, 실제로 보면 그 짐작보다 훨씬 좋다.
주인공이 처음부터 나쁜 놈이라는 걸 드라마가 숨기지 않는다
프랭크 언더우드. 미국 하원 원내총무인데 권력에 굶주린 정치인이다. 드라마 1화에서 이 인물이 어떤 사람인지 바로 보여준다. 숨기지 않는다. 오히려 이 인물이 카메라를 보면서 직접 시청자한테 말을 건다. 자기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왜 이런 선택을 하는지 직접 설명해준다.
이 장치가 드라마를 완전히 다르게 만든다. 프랭크가 꾸미는 계획을 시청자만 알고 있는 상태에서 다른 인물들이 아무것도 모른 채 움직이는 걸 보는 재미가 있다. 나쁜 짓을 하는 걸 알면서도 그 계획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보고 싶어서 다음 화를 누르게 되는 구조다. 응원하면 안 되는 사람을 응원하게 만드는 드라마는 소프라노스 이후로 하우스 오브 카드가 가장 잘한다.
정치 지식 없어도 따라가는 데 전혀 문제없다
미국 정치 시스템을 잘 모르면 어렵지 않을까 걱정하는 경우가 있는데, 실제로 보면 그런 걱정이 필요 없다는 걸 금방 알게 된다. 법안이 어떻게 통과되는지, 의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같은 배경 지식 없이도 이야기 자체는 충분히 따라갈 수 있다.
핵심은 정치 시스템이 아니라 권력 게임이다. 누가 누구를 이용하고, 누가 누구한테 배신당하고, 어떤 거래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이건 미국 정치 얘기가 아니라 사람 사이의 얘기다. 그래서 배경 지식 없이도 보는 내내 긴장감이 유지된다.
클레어라는 인물을 놓치면 안 된다
프랭크의 아내 클레어 언더우드. 처음에는 그냥 정치인 아내처럼 보인다. 시즌이 쌓일수록 이 인물이 드라마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보이기 시작한다. 로빈 라이트가 이 역할을 맡았는데, 시즌이 갈수록 연기가 더 강렬해진다.
프랭크와 클레어의 관계가 이 드라마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다. 부부인데 동료처럼 움직이고, 동료인데 각자의 계산이 다르다. 두 사람이 같은 방향을 향하는 것 같다가 어느 순간 균열이 생기는 과정이 시즌이 갈수록 드라마의 중심이 된다.
시즌 1, 2가 가장 좋다는 평이 많다
총 6시즌인데 시즌마다 완성도 차이가 있다. 시즌 1, 2가 압도적으로 좋다는 평가가 많다. 프랭크가 권력을 향해 올라가는 과정이 이 두 시즌에 집중되어 있고, 이야기의 긴장감도 여기서 가장 높다. 프랭크가 어떻게 하원의원에서 시작해서 점점 위로 올라가는지를 따라가는 재미가 있다.
시즌 3부터는 평가가 갈린다. 권력을 잡은 이후의 이야기라 방향이 달라지는데, 이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다르다. 시즌 5까지는 볼 만하다는 의견이 많고, 시즌 6은 주연 교체 이슈가 있어서 상황이 달랐다. 우선 시즌 1, 2만 봐도 이 드라마가 왜 정치 드라마 추천에서 항상 상위에 있는지 충분히 이해가 된다.
정주행하기 전에 알아두면 좋은 것
하우스 오브 카드는 원작이 영국 드라마다. 1990년대 BBC에서 만든 드라마를 미국 배경으로 리메이크한 것인데, 원작도 좋다는 평이 있으니 미국판이 마음에 들었다면 영국판도 찾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정치에 관심 없어도, 미국 드라마에 익숙하지 않아도 하우스 오브 카드 시즌 1은 일단 3화까지만 보면 된다. 3화 끝나고 나면 프랭크 언더우드가 다음에 어떤 수를 둘지 궁금해서 멈추기가 어렵다. 권력 게임을 이렇게 재미있게 보여주는 드라마는 흔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