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 좀 봤다는 사람한테 소프라노스 얘기를 꺼내면 표정이 달라진다. 뭔가 아는 사람끼리만 통하는 것처럼. 그 표정이 뭔지 이제는 안다. 직접 보고 나서야 알게 됐다.
The Sopranos. 1999년부터 2007년까지 HBO에서 방영한 드라마다. 20년이 넘었다. 근데 지금도 역대 미드 순위를 검색하면 1위 자리를 내놓지 않는다. 브레이킹 배드도, 더 와이어도, 왕좌의 게임도 소프라노스 앞에선 2위다. 처음엔 그게 과장처럼 느껴졌는데, 3화쯤 되니까 그냥 납득이 됐다. 설명하기 어렵지만 이 드라마에는 다른 드라마에 없는 뭔가가 있다.
마피아 보스가 정신과 상담을 받으러 간다
설정부터가 독특하다. 주인공 토니 소프라노는 뉴저지를 기반으로 하는 마피아 조직의 보스다. 부하들을 통솔하고, 경쟁 조직과 싸우고, 돈을 만지는 전형적인 갱스터처럼 시작한다. 근데 이 사람이 공황발작을 일으켜서 정신과 상담을 받으러 간다.
이 설정이 드라마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이다. 매주 닥터 멜피라는 정신과 의사 앞에서 토니가 자기 얘기를 털어놓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장면들이 생각보다 훨씬 흥미롭다. 마피아 보스가 어머니 얘기를 하면서 무너지는 장면, 꿈 얘기를 하면서 자기도 모르는 감정을 드러내는 장면들이 범죄 조직 이야기보다 오히려 더 강렬하게 남는다. 총 맞는 장면보다 상담 장면이 더 긴장되는 드라마가 또 있을까 싶다.
토니 소프라노라는 인물이 문제다
이 드라마가 오래 기억에 남는 가장 큰 이유는 토니 소프라노라는 캐릭터 때문이다. 명백히 나쁜 짓을 하는 인물이다. 사람을 해치고, 거짓말하고, 주변 사람들을 이용한다. 근데 이상하게 이 사람한테 감정이 간다.
가족한테 잘해주려고 노력하는 아버지이기도 하고, 친구들한테 의리 있는 사람이기도 하고, 뭔가 억울한 사정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보다 보면 토니가 잘 됐으면 하는 마음이 생기는 순간이 있는데, 그 마음이 들었을 때 스스로 좀 당황스럽다. 나쁜 사람한테 응원을 보내고 있다는 자각. 이 드라마가 의도적으로 만들어내는 감각이다. 제임스 간돌피니라는 배우가 이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했고, 이 배우 없이는 소프라노스가 존재할 수 없었을 거라는 말이 과장이 아니라는 걸 보면서 느끼게 된다.
조직 이야기와 가족 이야기가 동시에 진행된다
소프라노스는 두 개의 이야기가 항상 동시에 돌아간다. 마피아 조직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 그리고 토니의 가정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 이 두 이야기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전개되는 구조인데, 이게 드라마를 훨씬 풍부하게 만든다.
조직에서 치열하게 싸우고 들어와서 아내랑 부부 싸움을 하고, 딸 학교 문제로 고민하고, 아들이 말을 안 들어서 답답해한다. 이 가정 장면들이 생각보다 많고, 생각보다 현실적이다. 마피아 보스 집안이라는 설정인데 공감되는 순간이 계속 나온다는 게 이 드라마의 이상한 매력이다.
시즌이 많아도 늘어지지 않는다
총 6시즌이다. 분량이 많아서 시작을 망설이는 경우가 있는데, 실제로 보면 그 걱정이 사라진다. 시즌마다 이야기가 다른 방향으로 진화하면서 질리는 구간 없이 흘러간다. 오히려 분량이 많은 덕분에 인물들에 대한 감정이 충분히 쌓인다. 시즌 3, 4쯤 가면 조연 캐릭터 한 명 한 명한테도 애착이 생기는 게 느껴진다.
결말은 미드 역사상 가장 논란이 많은 마지막 장면 중 하나로 꼽힌다. 처음 봤을 때 멘붕이 오고, 찾아보고, 다시 생각하게 되는 구조인데 그 경험 자체가 소프라노스의 마지막 선물 같은 거다. 미리 스포 찾아보지 말고 직접 경험하는 걸 강하게 추천한다.
어디서 볼 수 있나
국내에서는 웨이브에서 볼 수 있다. 넷플릭스에는 없고, 왓챠에도 없다. 웨이브에서 전 시즌이 제공되고 있으니 구독 중이라면 바로 시작할 수 있다. 역대 미드 추천을 검색할 때마다 소프라노스가 1위에 있는 이유, 직접 확인해보는 게 가장 빠르다.
1화는 조금 느리게 시작된다. 근데 3화까지만 가면 된다. 그때쯤 이 드라마가 어떤 드라마인지 감이 잡히고, 그 이후로는 멈추는 게 어려워진다. 20년 넘은 드라마가 지금도 1위인 데는 이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