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왕실 이야기라고 해서 딱딱하고 지루할 것 같았다. 그냥 역사 다큐멘터리 같은 느낌이려니 하고 별 기대 없이 틀었는데, 시즌 1 첫 화가 끝났을 때 이미 다음 화를 누르고 있었다.
더 크라운은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재위 기간을 다룬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그게 이 드라마를 보는 내내 묘한 감각을 만들어낸다. 화면 속 인물들이 실제로 존재했던 사람들이라는 사실이 모든 장면의 무게를 다르게 만든다.
왕실 이야기인데 왜 이렇게 인간적으로 느껴지지
더 크라운을 보기 전에 상상했던 건 화려한 궁전과 격식 있는 장면들이었다. 실제로 보면 그런 장면들도 물론 있지만, 이 드라마가 진짜 집중하는 건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의 감정이다.
여왕이라는 자리가 한 사람에게 어떤 무게를 주는지, 가족으로서의 삶과 국가의 상징으로서의 역할 사이에서 어떤 감정을 겪는지가 굉장히 현실적으로 그려진다. 왕실이라는 배경이 아니었다면 그냥 평범한 가족 이야기였을 장면들이, 그 배경 때문에 훨씬 복잡한 감정을 만들어낸다.
보다 보면 어느 순간 엘리자베스 여왕이라는 인물에 자연스럽게 감정이 쌓인다. 동정도 아니고 존경도 아닌, 그 중간 어딘가의 복잡한 감정이다.
시즌마다 배우가 바뀌는데 오히려 그게 더 좋다
더 크라운의 특이한 점 중 하나는 시즌마다 주요 인물들을 연기하는 배우가 바뀐다는 거다. 인물이 나이를 먹으면서 다른 배우로 교체되는 방식인데, 처음 들으면 어색할 것 같지만 실제로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새로운 배우가 등장할 때마다 같은 인물의 다른 면이 보이는 느낌이 있어서 흥미롭다. 시즌 3에서 올리비아 콜맨이 엘리자베스 여왕을 연기할 때는 시즌 1, 2와는 완전히 다른 감각으로 그 인물이 느껴졌다. 배우가 바뀌었는데 인물의 연속성이 유지된다는 게 신기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각 시즌마다 새로운 배우진이 구성되는 만큼 연기의 밀도가 전체적으로 높다. 어느 시즌을 봐도 연기 때문에 몰입이 깨지는 순간이 없다.
다이애나 이야기가 나오는 시즌부터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시즌 1, 2가 엘리자베스 여왕 중심의 이야기라면, 시즌 3부터는 왕실 전체의 이야기로 시선이 넓어진다. 그리고 시즌 4에서 다이애나가 등장하면서 드라마의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다이애나와 찰스의 관계가 그려지는 방식이 굉장히 냉정하고 직접적이다. 미화하거나 어느 한쪽의 편을 드는 방식이 아니라, 두 사람이 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는지를 보여주는 구조다. 보면서 감정이 복잡해지는 구간이 이 시즌에 집중되어 있다.
실제 역사를 알고 있는 상태에서 보기 때문에 어떻게 흘러갈지는 알고 있다. 그런데도 장면 하나하나에서 감정이 흔들리는 건 막을 수가 없다.
총 6시즌, 어디서 멈추면 좋을까
더 크라운은 시즌 6로 완결됐다. 전체를 다 보면 엘리자베스 여왕의 즉위부터 말년까지를 한 편의 긴 이야기로 경험하게 된다. 그 경험 자체가 꽤 특별하다.
시즌 4까지가 드라마 전체에서 완성도가 가장 높다는 평가가 많다. 시간이 부족하다면 시즌 4까지만 봐도 이 드라마가 왜 꾸준히 추천 목록에 오르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시즌 5, 6는 그 이후에 여유가 생길 때 이어서 보면 된다.
역사나 왕실에 평소 관심이 없던 사람도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빠져드는 드라마다. 실화라는 사실이 주는 무게감이 끝까지 유지되기 때문에, 마지막 화가 끝나고 나서도 한동안 그 감각이 남는다.